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탬파베이 레이스/역사 (문단 편집) === 1998~2005 === ||<-4><#000066><:> '''{{{#ffffff 1998년 3월 3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나온 데블레이스의 1호 기록들}}}''' || ||[Youtube(wizSLdg5d30)] '''1호 투구: [[윌슨 알바레즈]]'''[* 포수는 존 플래허티, 상대 타자는 브라이언 헌터, 주심은 리치 가르시아였다.]||[youtube(dHlWOf1Ttr8)] '''1호 안타: [[데이브 마르티네즈]]'''[*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인 그 분 맞다.]|| ||[youtube(9KYg8BPppjw)] '''1호 홈런: [[웨이드 보그스]]''' ||[youtube(SVjpnUFSURc)] '''번외: 보그스의 3,000번째 안타'''][* [[1999년]] 8월 7일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달성. 참고로 사상 최초로 3천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한 선수다. 이후 [[데릭 지터]]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3천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때려냈다.] || 1998년부터 아메리칸리그에 가세한 탬파베이가 10년간 기록한 성적은 5팀 중 '''5555554555'''.[*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8888577]], [[LG 트윈스|LG]]의 [[6668587667]], [[한화 이글스|한화]]의 [[5886899678]], 이 3개의 상위 버전이다.] 10년간 평균 승률이 4할이 안된다. MLB를 대표하는 최강팀이자 빅마켓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1990년대 팀 페이롤 1위를 각각 찍을 정도로 제법 큰 시장을 가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같은 지구에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같은 시기에 창단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마찬가지로 타이트한 NL 서부를 뚫고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쥔 걸 생각하면 데블레이스의 부진은 심각했다. 여기에는 구단주 빈센트 나이몰리와 단장 척 라마의 삽질이 주효했다. 나이몰리 구단주는 '인터넷은 한때의 유행'이라면서 2005년 물러날 때까지 직원들의 이메일을 금지하고 자신이 직접 모든 서류를 읽어보고야 결재하던 구시대 인물이었다. 거기에 흥행이 안된다면서 팀을 닦달하면서도, 음식물 반입금지 규정을 내세워 관광버스를 3시간을 타고 온 노부부를 견과류 한 봉지 때문에 경기장에서 내쫓는가 하면,[* 심지어 이 노부부가 이 캐슈를 가지고 들어가려는 이유는 요깃거리 하려는것도 아니고 [[당뇨병]] 때문이었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당이 떨어지면 목숨까지 위태로워진다. 결국 이 노부부는 경기가 끝나고 같은 관광버스를 타고왔던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3시간 이상을 구장 주차장에 세워둔 관광버스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경기 중에 바깥음식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보이면 그에게 다가가서 어느쪽 입구로 들어왔는지 물어본 후 그쪽 입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즉석에서 해고하기도 하고, 기자석에서 피자를 먹던 기자도 끌어내려다 실패한 적도 있고,[* 이 시대에는 공식적으로 기자석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기는 했었지만 사문화된 규칙이었다.] 경기 전 미국 국가 연주를 위해 초대한 지역 고등학교 밴드한테 고액의 입장권을 사라고 강요하는 등의 막장 행각을 선보여서 지역주민들과 언론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후술할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에 당시 구단의 막장 행각이 잘 나와 있다.] 물론 나이몰리 구단주가 탬파에 메이저리그팀을 유치하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지역을 대표해서 솔선수범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는 공은 모두가 인정했지만, 그의 능력은 거기까지만이었고 구단주로서는 능력은 빵점이었다. 여기에 단장인 척 라마는 무능함의 극치로, 꾸준한 꼴찌의 보상인 드래프트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위픽 지명을 하고 트레이드도 못하면서 팜을 개박살 내버렸다. 기껏 확장 드래프트로 영입한 [[바비 아브레우]]를 별 볼일 없는 유격수 케빈 스토커를 받고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 시키는가 하면, 콜로라도에서 5년간 평균 3할의 타율에 세 번을 40홈런을 넘긴 강타자 [[비니 카스티야]]를 트레이드해왔지만, 2년 전 타율 0.319에 46홈런을 치던 그는 2000년 탬파에서 타율 0.222/출루율 0.254/장타율 0.308을 찍었다. 장타율이 전성기 적 타율만도 못 나온 셈. 이렇듯 성적에만 조급한 막장 짠돌이 구단주와 이런 구단주를 견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단장의 시너지 효과로 탬파베이는 창단 동기 애리조나처럼 돈을 퍼부어 강력한 팀을 만든 것도 아니고, 유망주도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 선수들을 충분히 확보하지도 못하면서 한물 간 노장선수들에게 돈은 돈대로 썼다. 게다가 탬파 지역은 [[NFL]]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버커니어스]][* 글레이저 가문 소유. 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구단주다.]를 위시한 [[미식축구]]팀과 [[올랜도 매직]]이 인근해있는 [[NBA]]가 강세인 지역. 그래서 마켓도 작은데 늘 지고있으니 꿈도 희망도 없는 팀이었다. 거기에 [[NHL]]의 [[탬파베이 라이트닝|라이트닝]]이 뜬금없이 스탠리컵을 우승하면서 그쪽으로 팬덤이 빠져나간건 덤이다.[* 진짜로 종목 불문하고 웬만한 미식축구 팀이 아니라면 스몰마켓 팀들은 같은 동네의 다른 종목 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 관중 동원력에 악영향이 있다. 2009-10 스탠리컵 챔피언 [[시카고 블랙호크스]]가 리글리 필드 삭스-컵스 게임에서 국가 제창을 하고 2010-11 챔피언 [[보스턴 브루인스]]가 펜웨이 파크에서 대규모 시구행사를 가진 사례도 있지만, 이건 빅마켓 클럽들이라 관중이 꽉꽉 들어차는 구장에서나 팬들이 대규모로 모여서 축하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후술할 것처럼 홈 구장 [[트로피카나 필드]]의 입지도 최악이라서 관중 동원에 악영향을 미쳤고, 이는 탬파베이가 도시 인구와 광역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스몰 마켓이 되어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다만 탬파가 미국을 대표하는 휴양도시이기 때문에[* 주세 혜택 덕에 [[알렉스 로드리게스]]나 [[데릭 지터]]같은 수억불 규모의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들은 실주소를 탬파에 두고 일할 때만 자기 팀 있는 곳에 별장 사서 먹고 잔다.] 선수생활 말년의 왕년의 스타들이 마지막으로 뛰는 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웨이드 보그스]]가 대표적인 선수로 1999년 탬파베이에서 3000안타를 치고 은퇴해 탬파베이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가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해선 팬덤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보그스는 보스턴에서 11시즌을 뛰었고, 26번은 보스턴 영구결번이 되었으며(양키스에 제 발로 간 경력 때문에 2015년에야 됨) 명전도 보스턴 모자를 쓰고 들어갔는데, 탬파에선 고작 말년 2시즌만 뛰었으니... 워낙 인기가 없던 팀의 쇄신을 위해 "영구결번이 탐나면 탬파로"라고 꼬셨기 때문이다.] 그외에 약물로 악명 높은 [[호세 칸세코]], 탬파 출신으로 양키 왕국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던 티노 마르티네즈 등이 거쳐갔다. 2003년에 탬파 출신의 대스타였던 [[루 피넬라]] 감독을 사상 초유의 선수 ⇔ 감독 트레이드[* 피넬라 감독과 함께 내야수 유망주 안토니오 페레스를 데려왔는데, 반대급부로 내준게 무려 올스타 외야수였던 [[랜디 윈]]이었다. 라마 단장의 삽질 중 하나.]로 영입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2004 시즌 중반 갑자기 연승을 몰아치더니 '잠깐' 5할 승률을 달성한 적도 있었다. 이것은 탬파베이 역사상 거의 최초. 그러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고 알동 빅3와의 격차는 여전히 줄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해에 처음으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재끼고 4위를 기록했다는 것. 팀 역대 최초의 70승으로 창단 이후 10년 중 제일 높은 성적이다. 물론 이듬해 67승으로 다시 5등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이 즈음 젊고 유망한 타자 여럿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칼 크로포드]], [[로코 발델리]], [[호르헤 칸투]], 자니 곰스 등이 주목받았고, 팀의 4번타자 [[오브리 허프]][* 4번타자로 한 시즌 30홈런을 쳐낼 수 있는 선수임에도 정해진 포지션 없이 유틸리티맨으로 뛰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중심타선+유틸리티맨 특징은 이후 [[벤 조브리스트]]가 이어받는다. 물론 활약은 조브리스트가 넘사벽으로 좋다.]가 건재했으며, 대형 유망주 [[B.J. 업튼]]도 2004년 처음 메이저 무대를 밟았다.[* 다만 이는 업튼의 성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후 업튼은 2005년 마이너에서만 1년을 보낸 뒤 2006년 다시 메이저로 올라온 뒤, 2007년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타자들 대부분이 성장하지 못한 채 망해버렸다는 것. 3년간 유틸리티로 굴리던 오브리 허프는 결국 2005년 OPS 8할이 무너지는 성적하락을 겪고, 2006년 페이스가 올라올 즈음 해서 트레이드되었다. 자니 곰스는 2005년 101경기에서 20홈런을 기록하고 타출장 3/4/5에서 타율과 출루율만 살짝 모자란, OPS 9할을 기록하는 아름다운 비율스탯을 기록하며 적잖은 기대를 받았으나, 2006년부터 급속도로 공갈포화가 진행되면서 더 성장하지 못했고 여기에 마이너에서부터 좋지 않았던 수비력도 발전이 없는 채 정체되며 좌투 전문 플래툰 요원 및 대타요원으로 자리잡는 데 그쳤다. [[호르헤 칸투]]는 2005년 2루와 3루를 오가며 28홈런에 OPS 8할대를 기록해 차세대 거포로 기대받았지만, 19볼넷/83삼진이라는 극악의 선구안이 발목을 잡으며 2005년이 커리어 하이가 되어버린 채 정체되며 2007년 시즌 중 트레이드, 2008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29홈런을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4년에는 [[KBO 리그]] [[두산 베어스]]에서 뛰기도 했다.] [[로코 발델리]]는 2003년 데뷔시즌부터 건실한 중견수 수비와 적절한 타격능력으로 2년간 탬파의 주전 중견수로 활약했으나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이탈하더니 재활 도중 팔꿈치까지 다쳐 토미 존 서저리까지 받으며 1년 반을 날렸고 복귀 이후에도 갖은 병치레로 커리어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 탬파베이의 주요 유망주 타자들 중 성공적인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간 선수는 [[칼 크로포드]] 한 명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타선은 그래도 유망주라도 나왔지, 투수진은 그보다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2004년까지는 선발진에 믿을 투수 하나 없었고, 그나마 2005년 [[스캇 카즈미어]]가 선발진에 자리를 잡고 뛰어난 구속과 구위를 바탕으로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받은 정도. 그나마도 카즈미어를 제외하면 괜찮은 선발은 없었고, 불펜도 데니스 바에즈의 2년간의 활약을 빼면 전반적으로 불안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